인왕산의 풍수적 의미
인왕산(仁王山, 338m)은 서울 내사산 중 서쪽을 담당하는 산으로, 우백호(右白虎) 의 위치에 해당합니다.
서쪽 = 金 = 백호로, 가을·결실·엄격함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화강암 바위가 웅장하게 노출된 산세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로도 유명합니다.
인왕산 자락에는 청와대(현 개방)와 부암동 고급 주거지가 위치해 있으며, 金 기운의 권위와 절제가 느껴지는 지역입니다.
어진 임금이 태어난 산
인왕산은 조선 개국 초기까지 서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서산(西山) 이라 불렸습니다. 세종대왕이 서산 아래 서촌에서 태어나자, 어질 인(仁)자와 임금 왕(王)자를 써서 인왕산(仁王山) 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이 "어진 임금이 태어난 곳이니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한양 천도의 풍수 논쟁
한양 천도 당시 풍수적 관점에서 어떤 산을 주산으로 삼을지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아 경복궁 정문(광화문)을 동쪽으로 내자고 했으나, 정도전 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때 무학대사는 "200년 후에 경복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희들이 알겠느냐"고 개탄했다고 전해지는데, 과연 200년 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전소되었습니다.
경희궁과 왕기(王氣) 전설
인왕산에서 내려온 산맥은 사직터널 과협을 지나면서 거친 바위산에서 부드러운 흙산으로 변합니다. 이 박환(剝換) — 산세가 순화되는 — 과정은 풍수에서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광해군 때 풍수승 성지가 "인왕산 아래 명당이 있어 궁궐을 지으면 태평성대가 온다"고 건의하여 경희궁이 지어졌고, 이후 조선 후기 임금들이 이곳을 선호했습니다. 풍수사 김일룡은 이 터에 "왕기(王氣)가 서린다"고 했는데, 실제로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하면서 이 예언이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내사산의 불균형과 왕위 승계
서울 내사산에서 좌청룡(낙산 125m)이 우백호(인왕산 338m)보다 현저히 낮은 것은 풍수적 불균형으로 해석됩니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 적장자 승계는 단 7명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제대로 왕업을 이룬 왕은 숙종뿐이었다는 풍수설이 전해집니다. 동대문(흥인지문)에 '之'자를 더하고 옹성을 쌓은 것도 이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한 풍수 비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