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의 풍수적 의미
낙산(駱山, 125m)은 서울 내사산 중 동쪽을 담당하는 산으로, 좌청룡(左靑龍) 의 위치에 해당합니다.
동쪽 = 木 = 청룡으로, 봄·성장·시작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내사산 중 가장 낮은 산으로, 흥인지문(동대문)에 '之'자를 더해 지기(地氣)를 보강한 것도 낙산의 약한 기세를 보완하기 위한 풍수 비보입니다.
현재 낙산공원에서는 서울 도심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한양도성 성곽길 코스로도 인기 있습니다.
풍수지리설에 시달린 산
낙산은 조선시대 내내 풍수지리설에 시달려왔습니다. 좌청룡이 우백호에 우선해야 하는데, 좌청룡인 낙산(125m)이 우백호인 인왕산(338m)보다 현저히 낮아 왕위의 적장자 승계가 원만치 못했다 는 설이 대표적입니다.
이 불균형은 조선왕조의 왕위 승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풍수설이 전해집니다.
주산 논쟁
한양 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으나 정도전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세종 때 풍수지리가 최양선은 창덕궁 뒤 응봉을 주산으로 삼자고 주장하며, "응봉이 주산이 되면 낙산 밖 안암(고려대 뒷산)이 좌청룡이 되어 조정이 안정될 것"이라 했습니다. 모두 낙산의 약한 좌청룡 기세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대한 풍수적 고민이었습니다.
타락산(駝酪山)의 유래
낙산은 타락산(駝酪山) 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궁궐에 우유를 공급하는 목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산등성이의 두 개 봉우리가 낙타의 등을 닮아 낙타산 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화동 벽화마을과 문화
낙산 서쪽 자락의 이화동은 벽화마을로 유명합니다. 1950년대 말 이승만 정부 시절 지은 국민주택들이 남아 있으며, 골목 돌담장과 축대에 벽화가 그려져 옛 서민 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낙산 서쪽 자락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로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이화장(사적 제497호) 도 있습니다.
마로니에공원과 대학로 일대는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긴 후 문화예술의 거리로 탈바꿈했으며, 고산 윤선도의 옛 집터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