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향로봉 사이 깊은 계곡의 비구니 사찰. 백호가 계곡물을 막는 하수사(下水砂)로 재물 명당. 고려 현종이 어릴 적 자객을 피해 숨었던
사찰

진관사

津寬寺

💧 ()🌿 ()

북한산 비봉·향로봉 사이 깊은 계곡의 비구니 사찰. 백호가 계곡물을 막는 하수사(下水砂)로 재물 명당. 고려 현종이 어릴 적 자객을 피해 숨었던 "신혈사" 자리.

진관사의 풍수적 의미

진관사(津寬寺)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비봉·향로봉 사이의 깊은 계곡에 자리한 비구니 사찰입니다.

신혈사(神穴寺) — 왕을 살린 명당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이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랑원군(현종)을 숨겼으므로 왕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년 뒤 목종이 죽자 대랑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이 되었고, 1011년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 한민족문화대백과

사찰명에 "혈(穴)"이 포함될 정도로 풍수적 의미가 깊은 자리입니다.

백호국(白虎局) — 비구니 절에 적합

북광풍수지리:

"(외부 청룡의 모습) 외부 청룡으로 아래로 갈수록 낮아지며 백호가 청룡 외감 싸안 잘 관 세우고 있어 기가 잘 머무는 모습입니다."

"정리하면 진관사는 암반으로 되어 있는 북한산 바로 아래에 자리...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이 명당인 혈이 되지 못하였으며, 백호가 잘 발달하여 여자들에게 좋아 비구니 절인 진관사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관사는 혈이 되지 못해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으로는 매우 좋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백호가 계곡물을 막는 하수사가 되어 재물이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하수사(下水砂)로 재물

"진관사 입구쪽의 청룡 쪽에서 백호 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의 모습으로, 계곡물이 백호 쪽에 부딪치죠. 즉 백호가 개곡물 ▶ 계곡물을 막는 하수사(下水砂)가 되어 재물이 들어올 모습입니다."

수륙재(水陸齋) — 조선 왕실 의례

"1397년(태조 6) 태조는 이 절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여러 번 행차하여 육지와 수중의 고혼과 아귀를 위하여 법식(法食)을 공양하는 수륙재를 지냈다." — 한민족문화대백과

물(水)과 결부된 의례 사찰로서의 성격이 진관사의 풍수적 특성과 연결됩니다.

현대의 외교

2015년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 진관사를 방문했으며, 이 인연으로 추후 한미 정상회담이 주선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위치

참고 자료

자주 묻는 질문

진관사는 어떤 사찰인가요?

진관사(津寬寺)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서쪽 자락의 비구니 사찰입니다. 본래 진관 비구니가 혼자 수도하던 신혈사(神穴寺)였으며, 고려 현종이 어릴 적 천추태후의 자객을 피해 진관 비구니가 본존불 수미단 밑에 판 지하굴에 숨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현종 즉위 후 1011년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 진관사라 했습니다.

진관사의 풍수적 분석은?

북광풍수지리에 따르면 진관사는 대웅전 등 모든 전각이 혈을 맺지 못해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으로는 약하지만, **백호가 잘 발달하여 여자들에게 좋아 비구니 절인 진관사와 잘 맞다**고 평가됩니다. 또한 **백호가 계곡물을 막는 하수사(下水砂)가 되어 재물이 많이 들어올 모습**이라고 분석합니다.

진관사의 수륙재(水陸齋)란?

태조 6년(1397) 진관사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태조가 여러 번 행차하여 육지와 수중의 고혼·아귀를 위해 법식을 공양하는 수륙재를 지냈습니다. 진관사는 조선 왕실 의례의 핵심 사찰이었습니다.

최근 진관사의 외교 행보는?

2015년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 진관사를 방문해 "사찰처럼 실체를 응원하겠다"고 했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추후 윤석열-바이든 회담이 주선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같은 유형의 명소

기운의 다른 명소

기운 전체 보기 →

내 사주와 진관사의 궁합이 궁금하다면?

내 오행 분석하기
진관사 풍수 오행 기운 — 水의 사찰 | 사주 fyi